[번외] 우리의 소금 - 자염


 

오늘은 우리의 소금 자염煮鹽에 대해 알아봅니다.

중국, 대만, 일본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 산후조리 음식 문화를 살펴보면 눈에 띄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음식을 짜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산후에 음식에 소금을 많이 넣어 짜게 먹으면 소금에 포함된 나트륨(Na)이 임신 중 증가된 세포외액(ECF)의 배출을 막아 붓기가 잘 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싱겁게 조리를 할 수 밖에 없어 대부분의 나라에선 소금의 사용을 최대한 줄입니다. 그러다보니 각 나라의 산후음식들은 맛이 없어 산모들이 아주 고통스러워하지요.

특히 꽃소금이라 부르는 염화나트륨 99%의 재제염(再製鹽)을 주로 사용하는 나라에선 고민이 아주 많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에서 예술가이자 희대의 미식가로 이름을 날린 키타오오지 로산진(北大路魯山人, 1883-1959)을 모티브로 삼은 일본의 대작 요리만화인 <맛의 달인>에서 주인공인 지로의 아버지는 “**산업이 소금이라 칭하며 판매하는 것은 염화나트륨이 99%. 염화나트륨은 소금의 주성분이지만 소금 그 자체는 아닙니다. 그 외의 미네랄이 20% 가까이 더해졌을 때 비로소 소금이지요. 염화나트륨 덩어리를 소금 대용품으로 먹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일본) 뿐입니다. 식생활의 기본인 물과 소금을 잃어버린 것은 단순히 먹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전체가 위기에 빠져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지요.”라고 하여 이온교환막을 사용해 전기제염법으로 만든 재제염을 주로 사용하는 일본의 요리문화를 비판하고 있기도 하지요.

하지만 우리 한민족에겐 지혜로운 조상님들께서 물려주신 나트륨이 적은 전통 숙성 간장과 자염이 있는데요, 이들을 통해 산모의 건강과 입맛을 동시에 잡을 수 있습니다.

음식의 간을 맞추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게 우리의 전통 소금, 즉 자염煮鹽입니다. 자염은 화염火鹽, 전오염煎熬鹽, 육염陸鹽 등으로 부르며, 바닷물의 염도를 높인 뒤 끓여서 석출시키는 소금입니다.

보통 우리의 전통 소금 제조방법이 천일염 방식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요, 천일염전은 구한말 일제의 염업정책에 의하여 우리나라에 도입되었으며, 조선총독부는 경기도, 평안남도 등 서해안에 대단위로 천일염전을 구축했습니다. 맛과 영양은 비교할 수 없으나 생산효율이 낮다는 이유로 자염 방식을 없애고 강제로 천일염 방식을 보급했던 것이지요.

단군할아버지 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우리 조상님들이 사용했던 소금은 천일염이 아니라 자염이었던 것입니다. <동의보감>에선 소금을 식염(食鹽)이라 했는데요, “바닷물을 끓이고 졸여서 만든 것(煎煉海水而成)으로 눈같이 흰 것이 좋다.”라고 하여, 우리 소금은 천일염이 아닌 자염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朴文秀, 1691-1756)도 소금(자염)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인물인데요, 그의 별명이 소금장수였다고도 하지요. 이에 대해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류승훈 선생의 글(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140102.22024191638)을 참고해보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1731년 7월 조선의 여름은 뜨거웠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가마솥더위가 계속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리 흉년까지 들어 백성은 소나무껍질로 연명했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삼남의 백성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하늘에 지내는 기우제도 통하지 않자 영조의 심정은 참담했다. 영조는 뼈아픈 심정을 이렇게 토로했다. "울음이 터지고 기가 막힌다. 잠자리에 들어도 잠이 오지 않고 음식을 대해도 그 맛을 모르겠다." 

지독한 가뭄을 하늘이 왕에게 내리는 벌로 여겼던 영조에게 송진명은 현실적 대안을 내놓았다. 천재지변은 이미 일어난 일이니 백성을 구할 소금을 확보하자는 안이었다. 가뭄이 일어나면 구황식품으로 꼭 필요한 것이 소금이었다. 소금은 사람이 일정량을 먹어야 하는 식품이며, 산과 들에서 채취한 나물을 절여 먹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했다.
송진명의 제안을 두고 고민하던 영조는 급히 박문수를 입궐시켰다. 그가 이번 가뭄을 구제할 수 있는 충직한 신하라 생각했다. 박문수는 설화에서 암행어사로 잘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국가 재정과 국방 분야의 전문가였다. 재난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급히 국가 재정을 확보해야 했다. 조선시대 소금은 쌀과 무명에 버금가는 국가 재원이었다.

 박문수는 스스로 소금을 구워 나라를 구하겠다고 영조에게 아뢰었다. 영조의 명을 받은 박문수는 특명사신으로 (부산) 명지동에 파견되었다.


조선이 운영하는 대규모 공염장이 박문수에 의하여 설치되는 순간이었다.(중략) 한편 소금을 굽기 위해서는 땔감이 필요했다. 조선시대 소금은 햇볕과 바람의 에너지로 만드는 천일염이 아니다. 짠물을 끓여서 생산하는 자염(煮鹽)이었다. 끓이기 위해서는 엄청난 땔감이 소요되었다. 낙동강 하구에서 쑥쑥 자라는 갈대는 명지동 염전을 활활 일으키는 땔감이었다.(중략) 특명사신 박문수는 천혜의 조건을 가진 명지도 염전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6개월 만에 얻은 소금이 무려 1만8000석이었다. 이 소금은 헐벗고 굶주린 백성 구제에 사용되었다. 박문수는 1733년까지 명지도 염전을 총괄적으로 운영하는 일을 했다."
 


신안 증도에 있는 소금박물관에 걸려 있는 소금의 어원에 대한 재미있는 게시물입니다. 자염도 소금의 한 종류이니 소금에 대한 상식을 한 번 살펴보고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소금생산량이 제일 많은 것으로 알려진 증도입니다.



광각렌즈를 안가져가서 화각이 좀 좁은데요, 염전이 광활합니다.



이곳 증도의 염전에서도 과거에는 자염을 생산했었지요.


 

증도에 있는 염전들에 이어 우리나라 대표염전 중 하나인 곰소염전입니다. 허영만 선생의 <식객>에서도 자세히 소개가 되었었지요.



이곳 곰소 역시 일제강점기 이전엔 화염火鹽 즉 자염을 생산했었지요.



곰소염전 입구 도로 맞은 편에 서 있는 구진마을 안내판에 “구진마을 주민들의 생활은 소금과 관련되어 있다. 지금은 천일염이 대부분이지만 해방 후에 시작된 것이고, 그 이전에는 화염(火鹽)을 생산했다. 소금을 굽는 벌막, 또는 벗등과 바닷물 염도를 높이는 섯등 등의 화염생산 시설물이 마을 앞에 있었다. 화염은 6.25 전쟁 이전까지 생산되었다.”라고 한 화염에 관한 기록이 보이네요.


자염은 제조 방법의 독특한 만큼이나 소금의 성분도 천일염 등 다른 소금과는 다릅니다. 일반 소금에 비해 염도는 83~85%에 불과하고, 반면에 칼슘은 12배나 높고, 아미노산 함량도 2배 이상 높습니다.

때문에 같은 김치를 절여도 자염을 사용하면 김치맛이 전혀 다릅니다. 몇 년 전에 TV에서 구순이 넘은 할머니께서 김치 담는 걸 보여주시면서 옛날엔 배추를 절이고 나서 맛을 보면 뒷맛이 달았는데, 요즘은 쓴 맛이 난다,,,,하시면서 좋은 소금을 써야한다 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그 할머니께서 옛날에 젊으셨을 적 한참 배추 절이실 때 사용하시던 소금이 바로 자염이었던 것이지요.

또한 임신이 안 되는 부부에게 소금을 먹여 출산을 기원하는 풍속이나, 소금장수가 과부집에 머물면서 집안 여성들을 모두 임신시킨 소금장수 설화 등을 볼 때 좋은 소금과 남녀 생식기 기능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한 번 쯤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데요, 한의학에서도 짠 맛이 생식기계를 대표하는 신장腎臟에 배속되어 있음도 그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자염 생산에 제일 적합하다고 알려진 곳 중 하나인 태안 낭금갯벌입니다. 갯벌 사운데 쌍섬이 사이 좋게 앉아 있네요.



낭금갯벌의 대략적인 위치입니다. 매년 8-10월 사이에 자염축제가 열리기도 하지요. 영화 <식객2-김치전쟁>에서 배우 김정은이 한 염전에 찾아가서 염전주인에게 "말했자나요. 난 최고의 소금이 필요하다고,,,,자염을 만들어주세요."라고 말하자 주인이...직접 만들라며 거절하자 직접 갯벌에 나가 삽질과 써레질을 한 후, 뻘에서 농축된 아주 짠 바닷물을 염정鹽井에 모았다가 염막鹽幕으로 운반한 후 큰 가마솥인 염부鹽釜에 붓고 끓여서 만든 소금이 바로 자염입니다. 


태안자염 게시판(http://saltpeople.com/mall/m_view.php?ps_boid=46&ps_db=notice)에 영화관련 글이 있네요.

 



쌍섬을 구도에 넣느라,,,배 위치가 조금 애매하네요.



날이 너무 추워 삼각대도 못 세우고 정신 없이 찍고 차로 돌아왔다가 조금 있다 또 이동해서  후다닥 찍고 했습니다. 논산훈련소 시절 이후로 손가락이 빨갛게 다 변한 적은 처음이네요.



날이 아주 춥더군요. 바닷물도 다 얼었습니다. 그나저나,,,조리개를 좀 바짝 조였어야하는건데 ㅠ.ㅠ 



조용하고 깨끗하고...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치유가 되는 그런 풍경입니다.



차가운 기운을 뚫고 따스한 햇볕이 내리고 있습니다. 



몸에 좋은 우리 전통 소금으로 우리의 맛과 건강을 지켜야겠습니다.^^


cf) 사용장비 : Pentax K-5, Pentax 35mm limit macro, Tamron 17-50, 라이트룸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