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순(竹筍)은 섬유질과 철분이 풍부하여 특히 일본에서 빈혈과 변비로 고생하는 산모들을 위한 산후음식의 재료로 많이 이용됩니다. 아삭아삭한 질감과 특유의 향은 뭐 말할 것도 없지요. 죽순의 뛰어난 맛에 대해 <동문선> 제65권 월등사 죽루죽기(月燈寺竹樓竹記)에선 다음과 같은 글을 볼 수 있습니다.
화산(華山) 월등사 서남쪽에 죽루(竹樓)가 있고, 누의 서편 언덕에 대나무 수천 그루가 솟아서 절의 후면으로 둘러 있는데 빽빽하였다. 주장(主掌) 노승인 대선후(大禪侯)가 일찍이 특별히 이를 좋아하였다. 하루는 누(樓) 위에서 손을 모아놓고 주장 노승이 대를 가리키면서 손[客]에게 말하기를, “여러분들은 대의 좋은 점을 좀 말씀하여 주십시오.” 하였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죽순은 훌륭한 식료품입니다. 그 싹이 싱싱하게 나오면 마디는 촘촘하고 댓속은 살이 올라 꽉 차게 됩니다. 이때에 도끼로 찍어서 칼로 다듬어 가지고 솥에 삶아내어 풍로에 구워놓으면 냄새가 좋고 맛이 연하여 입에는 기름이 흐르고 뱃속은 살이 오릅니다. 쇠고기나 양고기가 맛이 없어지고 노린내 나는 산짐승 고기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아침절 내내 먹어도 싫증이 나지 않을 것이니, 대의 맛이란 이런 것입니다.” 하였다.
<동의보감>에서는 "성질이 차고[寒] 맛이 달며[甘] 독이 없다. 소갈을 멎게 하고 오줌을 잘 나가게 하며 번열(煩熱)을 없애고 기를 돕는다. 담을 삭히고 오줌을 잘 나가게 하며 위기(胃氣)를 고르게 한다. 죽순을 따서 쪄 먹거나 삶아 먹는다."라고 그 효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 죽순의 성질이 약간 차가우므로 소화력이 많이 떨어지는 산모들에게는 자주 권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죽순을 구경하러 담양 죽녹원에 가 보았습니다. 정문 매표소 공사 중이라,,,뒷편 골목길로 올라가는데 길가에 동백이 꽃봉오리들을 쏘옥 내밀고 있더군요. 한참을 보고 있자니...정현종 시인의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 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귀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것을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살지는 않았는지
우두커니처럼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으로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게으름 피우지 않고 하루하루 매순간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공기도 좋고 바람에 댓잎들 스치는 소리도 시원하고,,,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 따로 없네요.
햇살도 따뜻해 걷기 좋습니다.
대나무의 종류를 잘 설명해주고 있네요.
왕대와 솜대는 이름을 종종 들어보았는데 맹종죽은 좀 낯설지요? 지극한 효성의 상징으로도 회자되는데요, 이름과 관련된 고사가 있지요. 《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 손호전(孫浩傳)에 보면 삼국 시대 오(吳)나라의 효자 맹종(孟宗)의 고사가 나옵니다. 이야기인즉,,,,맹종의 어머니가 죽순을 매우 즐겼는데 겨울철 죽순이 나지 않을 때 어머니가 죽순을 원하자 맹종은 대숲에 들어가 슬피 울며 탄식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죽순이 돋아났고 이를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렸다 합니다. 정말일까요? 겨울에 죽순이 갑자기 쑤욱 올라왔다는 이 거짓말이,,, 그런데 <조선왕조실록> 인조 19년 신사(1641,숭정 14) 12월25일 (병인) 편에 보니..."전라도 능주(綾州) 땅에 쌓인 눈 속에서 죽순이 자라나 길이가 한 길 남짓하였고 잎이 난 것도 있었다."라는 구절이 있네요. 음력 12월이면 한 겨울인데, 겨울에도 간혹 죽순이 자라긴 하나 봅니다.@.@
그나저나 산책로 중간중간 이정표들이 엉망이라 갔던 길 또 가고...자연은 수려한데 인간세는 어째 이런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올라가는 대나무 기상이 대단합니다. 그나저나 시기적으로 너무 일찍 가는 바람에 죽순은 구경을 못하고 왔네요. 양력 5월말에서 6월초가 되어야 얼굴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아쉽,,,
그러던 차에 엊그제 집사람이 시장에 죽순이 나왔다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왔더군요. 냉큼 사가지고 오라 했지요. 거의 올해 첫물이지 않을까 합니다. 통통하니 아주 실하네요.
죽순은 처음 나올 때 그 모양이 마치 송아지뿔(犢角)처럼 생겨서 순각(筍角)이라고도 하고, 껍질이 알록달록해서 탁룡(籜龍), 혹은 용손(龍孫)으로도 불립니다. 또한 미인(美人)의 손가락을 닮았다고도 하고, 껍질에 겹겹이 싸인 모습을 흡사 비단 포대기에 싸인 아기에 비유하기도 하지요.
죽순은 예로부터 귀한 식재료로 대접 받아 왔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년 기해(1419,영락 17) 12월7일 (정축) 편에 보니, 제사상 차리는 순서에 대해 "첫 줄은 달래 김치를 앞에 놓고, 젓갈을 다음에 놓으며, 둘째 줄은 무우 김치를 앞에 놓고, 사슴 젖과 미나리 김치를 다음에 놓으며, 셋째 줄은 토기 젖을 앞에 놓고, 죽순 김치(순저筍菹)와 생선 젖을 다음에 놓는다."라고 한 부분을 보면 조선시대엔 궁중의 제사에서도 죽순을 이용한 김치를 상에 올렸슴을 알 수 있네요.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 도설(圖說)
<산림경제(山林經濟)> 치선(治膳) 편에 보면 “죽순 정과[煎筍]는, 동짓달에 딴 죽순 10근을 껍질째 7부쯤 익혀, 껍질을 벗겨내고 아무렇게나 썰어, 꿀 반 근에 한참 담갔다가 건져내어 물기가 걷힌 뒤 꿀 3근을 끓여 찌꺼기를 걸러내고 거기에 술을 넣어 반죽하여 자기그릇에 저장하면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을 보면 죽순으로 정과正果도 만들어 먹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과는 물기가 적은 과일이나 이파리 채소가 여러 가지 채소에 꿀이나 물엿을 넣어 쫄깃쫄깃하고 달게 조린 것으로 전과(煎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다산시문집> 부용당기(芙蓉堂記)에 보면 "수령이 선화당(宣化堂)에 오게 되면 단정한 걸음걸이와 엄숙한 얼굴빛을 하고 말을 삼가며 예의에 맞게 공손히 행동을 하니, 한 사람도 훌륭한 관리가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곳처럼 연꽃 향기가 코를 찌르고 버들 빛이 눈에 비치며, 죽순(竹筍)과 고기가 상에 그득하게 놓여 있으며, 화장한 기녀들이 모여 있으며, 순주(醇酒)로 창자를 적시며, 회나 구운 고기로 배를 채우는 장소에서는 상관(上官)은 안색을 좋게 하여 즐기고 지껄이기에 막힘이 없습니다."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보아도 죽순이 고급 식재료로 사용되어 왔슴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선최고의 미식가 허균이 쓴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제20권 중에 벗인 한호(韓濩)를 초대하며 쓴 [경홍(景洪)을 초대함]이란 글이 있습니다.
“봄은 이미 지나서 그윽한 꽃들이 그대를 기다리다가 모두 이울었습니다. 녹음이 저렇게 무성하고 꾀꼬리 소리도 정말 고우니, 봄빛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하필 개울 가에 가득히 핀 복숭아꽃 뿐이겠습니까. 섬돌에서 나푼대는 홍작약도 볼만하니 보낸 수레를 급히 타고 오기 바랍니다. 수수로 빚은 술이 한창 익었으니, 그물을 떠서 냇가에 나가 그대와 함께 잉어를 잡아 회칠 계획입니다. 죽순 나물과 자라 탕도 안주로 장만하겠습니다. 나는 평생에 구복(口腹)만 위한 때문에 맛좋은 주식(酒食)으로 청하오니 먹기만 탐한다고 비웃지 마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벗을 위해 맛난 술과 안주를 준비하는 모습이 참 정겹지요.
요즘 우리나라에선 죽순이 일반 가정요리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된장찌개에 넣거나 볶은 나물인 죽순채(竹筍菜) 정도로 그다지 일반적이지 않은데요, 일본이나 중국에선 다양한 요리에 죽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예술가이자 희대의 미식가로 이름을 날린 키타오오지 로산진(北大路魯山人, 1883-1959)을 모티브로 삼은 일본의 대작 요리만화인 <맛의 달인> 제 49편에 보면 여러가지 죽순요리법이 나오는데요, 졸여서 밥반찬으로 먹는 것 외에 그대로 구워서 먹기도 하고, 죽순 속을 파낸 후 닭고기를 채워 구워 먹기도 합니다. 중국이야 뭐,,,죽순요리의 종주국이라 할 정도로 여러가지 요리에 다양한 방법으로 죽순을 사용하고 있지요.
밭에서 갓 딴 강냉이 껍질 까듯,,,껍질을 한 겹 한 겹 벗겨 냅니다. 한참 벗겨야 합니다. 벗겨지는 껍질 장 수에 비례해 허탈함도 커져갑니다. 알맹이가 갈수록 줄어드니까요.
허탈함을 달래주기라도 하듯,,,껍질을 벗길 때마다 특유의 죽순향이 공간을 가득 채웁니다. 울창한 대숲 한 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죽순 껍질을 보니 얘기거리가 하나 있는데요, 옛날 중국의 한나라 고조(漢高祖) 유방이 정장(亭長) 시절에 죽순 껍질로 만든 관(죽피관竹皮冠, 일명 유씨관劉氏冠, 작미관鵲尾冠이라고도 함)을 쓰고 다녔는데, 천자가 되어서도 늘 그 관을 썼다고 하는 고사지요. 껍질로 관을 만들었다,,,,상상이 잘 안가네요.
단단해서 먹기 힘든 밑둥도 잘라줍니다.
드디어 껍질과 밑둥을 다 제거한 알맹이가 모습을 드러냈군요. 작업하기 전 무게의 1/3도 채 안되는 것 같네요.
잘 다듬은 죽순을 손질하는 방법에 대해 <산림경제(山林經濟)> 치선(治膳)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미공(陳眉公)은 이렇게 말했다. “산중에 죽순(竹筍)은 정말 남새 가운데 특별한 것이니, 국을 끓이거나 포를 뜨는 것은 모두 본래의 맛을 잃은 것이다. 잿불에 묻어 껍질을 벗기는 것이 가장 좋다. 잿불에 묻어 익혀 먹는 맛이란 말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다.” 햇죽순 삶는 법은, 팔팔 끓는 물로 삶아 익히면 연하고 맛이 더욱 좋다. 만약 시들었거든 박하(薄荷)를 조금 넣어서 같이 삶으면 싱싱해진다. 육류와 같이 삶으면 박하를 쓰지 않더라도 그 순이 역시 신선하다. 염순(籢筍)은, 껍질 붙은 죽순은 박하에 약간의 소금을 넣고 한데 삶으면 껍질이 벗겨진다. 또 다른 한 방법은 잿물[灰汁]로 삶아도 벗겨진다. 죽순 말리는 법[做筍乾]은, 5월에 죽순살[筍肉] 1백 근을 따서 작은 물통에 소금 5되를 타서 죽순을 절였다가 반향(半餉 1향은 식사하는 시간, 반향은 짧은 시간)쯤 있다가 건져내어 말렸다가 본래의 소금물을 맑게 가라앉혀 죽순을 삶는다. 익거든 건져내어 눌러 물기를 빼고 햇볕에 말린다. 쓸 때마다 물에 담가 부드러워지거든 담갔던 물에 넣어 달이면 맛이 더욱 좋다. 죽순 말리는 법[晒筍乾]은, 12월에 딴 신선한 죽순을 껍질을 벗기고 썰어서 팔팔 끓는 물에 데쳐 볕에 말렸다가 쓸 때쯤 쌀뜨물에 담갔다 건지면 갓 딴 것 같다. 끓는 소금물에 데쳐 낸 것이 바로 함순(醎筍)이다.
손질한 죽순을 무쇠솥에 넣고 삶습니다. 철분의 화수분인 무쇠솥에 삶으니 죽순의 효능이 더욱 배가되겠지요?
아리고 딻은 맛을 제거하기 위해 쌀뜨물을 부어줍니다.
뚜껑을 잘 닫고 불을 피웁니다. 솥이 참 복스럽지요?
설설~~ 끓고 있네요.
최종 완성된 죽순입니다. 빛깔 참 곱지요?
한참 수확철에 넉넉히 구입해 손질해서 삶은 후 냉동실에 얼려두었다가 조금씩 꺼내어 요리에 사용하면 되겠습니다.^^
cf) 사용장비 : Pentax K-5II, Pentax 35mm limit macro, Metz 52 AF-1, 라이트룸 5.7
죽순(竹筍)은 섬유질과 철분이 풍부하여 특히 일본에서 빈혈과 변비로 고생하는 산모들을 위한 산후음식의 재료로 많이 이용됩니다. 아삭아삭한 질감과 특유의 향은 뭐 말할 것도 없지요. 죽순의 뛰어난 맛에 대해 <동문선> 제65권 월등사 죽루죽기(月燈寺竹樓竹記)에선 다음과 같은 글을 볼 수 있습니다.
화산(華山) 월등사 서남쪽에 죽루(竹樓)가 있고, 누의 서편 언덕에 대나무 수천 그루가 솟아서 절의 후면으로 둘러 있는데 빽빽하였다. 주장(主掌) 노승인 대선후(大禪侯)가 일찍이 특별히 이를 좋아하였다. 하루는 누(樓) 위에서 손을 모아놓고 주장 노승이 대를 가리키면서 손[客]에게 말하기를, “여러분들은 대의 좋은 점을 좀 말씀하여 주십시오.” 하였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죽순은 훌륭한 식료품입니다. 그 싹이 싱싱하게 나오면 마디는 촘촘하고 댓속은 살이 올라 꽉 차게 됩니다. 이때에 도끼로 찍어서 칼로 다듬어 가지고 솥에 삶아내어 풍로에 구워놓으면 냄새가 좋고 맛이 연하여 입에는 기름이 흐르고 뱃속은 살이 오릅니다. 쇠고기나 양고기가 맛이 없어지고 노린내 나는 산짐승 고기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아침절 내내 먹어도 싫증이 나지 않을 것이니, 대의 맛이란 이런 것입니다.” 하였다.
<동의보감>에서는 "성질이 차고[寒] 맛이 달며[甘] 독이 없다. 소갈을 멎게 하고 오줌을 잘 나가게 하며 번열(煩熱)을 없애고 기를 돕는다. 담을 삭히고 오줌을 잘 나가게 하며 위기(胃氣)를 고르게 한다. 죽순을 따서 쪄 먹거나 삶아 먹는다."라고 그 효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 죽순의 성질이 약간 차가우므로 소화력이 많이 떨어지는 산모들에게는 자주 권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죽순을 구경하러 담양 죽녹원에 가 보았습니다. 정문 매표소 공사 중이라,,,뒷편 골목길로 올라가는데 길가에 동백이 꽃봉오리들을 쏘옥 내밀고 있더군요. 한참을 보고 있자니...정현종 시인의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 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귀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것을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살지는 않았는지
우두커니처럼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으로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게으름 피우지 않고 하루하루 매순간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공기도 좋고 바람에 댓잎들 스치는 소리도 시원하고,,,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 따로 없네요.
햇살도 따뜻해 걷기 좋습니다.
대나무의 종류를 잘 설명해주고 있네요.
왕대와 솜대는 이름을 종종 들어보았는데 맹종죽은 좀 낯설지요? 지극한 효성의 상징으로도 회자되는데요, 이름과 관련된 고사가 있지요. 《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 손호전(孫浩傳)에 보면 삼국 시대 오(吳)나라의 효자 맹종(孟宗)의 고사가 나옵니다. 이야기인즉,,,,맹종의 어머니가 죽순을 매우 즐겼는데 겨울철 죽순이 나지 않을 때 어머니가 죽순을 원하자 맹종은 대숲에 들어가 슬피 울며 탄식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죽순이 돋아났고 이를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렸다 합니다. 정말일까요? 겨울에 죽순이 갑자기 쑤욱 올라왔다는 이 거짓말이,,, 그런데 <조선왕조실록> 인조 19년 신사(1641,숭정 14) 12월25일 (병인) 편에 보니..."전라도 능주(綾州) 땅에 쌓인 눈 속에서 죽순이 자라나 길이가 한 길 남짓하였고 잎이 난 것도 있었다."라는 구절이 있네요. 음력 12월이면 한 겨울인데, 겨울에도 간혹 죽순이 자라긴 하나 봅니다.@.@
그나저나 산책로 중간중간 이정표들이 엉망이라 갔던 길 또 가고...자연은 수려한데 인간세는 어째 이런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올라가는 대나무 기상이 대단합니다. 그나저나 시기적으로 너무 일찍 가는 바람에 죽순은 구경을 못하고 왔네요. 양력 5월말에서 6월초가 되어야 얼굴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아쉽,,,
그러던 차에 엊그제 집사람이 시장에 죽순이 나왔다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왔더군요. 냉큼 사가지고 오라 했지요. 거의 올해 첫물이지 않을까 합니다. 통통하니 아주 실하네요.
죽순은 처음 나올 때 그 모양이 마치 송아지뿔(犢角)처럼 생겨서 순각(筍角)이라고도 하고, 껍질이 알록달록해서 탁룡(籜龍), 혹은 용손(龍孫)으로도 불립니다. 또한 미인(美人)의 손가락을 닮았다고도 하고, 껍질에 겹겹이 싸인 모습을 흡사 비단 포대기에 싸인 아기에 비유하기도 하지요.
죽순은 예로부터 귀한 식재료로 대접 받아 왔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년 기해(1419,영락 17) 12월7일 (정축) 편에 보니, 제사상 차리는 순서에 대해 "첫 줄은 달래 김치를 앞에 놓고, 젓갈을 다음에 놓으며, 둘째 줄은 무우 김치를 앞에 놓고, 사슴 젖과 미나리 김치를 다음에 놓으며, 셋째 줄은 토기 젖을 앞에 놓고, 죽순 김치(순저筍菹)와 생선 젖을 다음에 놓는다."라고 한 부분을 보면 조선시대엔 궁중의 제사에서도 죽순을 이용한 김치를 상에 올렸슴을 알 수 있네요.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 도설(圖說)
<산림경제(山林經濟)> 치선(治膳) 편에 보면 “죽순 정과[煎筍]는, 동짓달에 딴 죽순 10근을 껍질째 7부쯤 익혀, 껍질을 벗겨내고 아무렇게나 썰어, 꿀 반 근에 한참 담갔다가 건져내어 물기가 걷힌 뒤 꿀 3근을 끓여 찌꺼기를 걸러내고 거기에 술을 넣어 반죽하여 자기그릇에 저장하면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을 보면 죽순으로 정과正果도 만들어 먹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과는 물기가 적은 과일이나 이파리 채소가 여러 가지 채소에 꿀이나 물엿을 넣어 쫄깃쫄깃하고 달게 조린 것으로 전과(煎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다산시문집> 부용당기(芙蓉堂記)에 보면 "수령이 선화당(宣化堂)에 오게 되면 단정한 걸음걸이와 엄숙한 얼굴빛을 하고 말을 삼가며 예의에 맞게 공손히 행동을 하니, 한 사람도 훌륭한 관리가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곳처럼 연꽃 향기가 코를 찌르고 버들 빛이 눈에 비치며, 죽순(竹筍)과 고기가 상에 그득하게 놓여 있으며, 화장한 기녀들이 모여 있으며, 순주(醇酒)로 창자를 적시며, 회나 구운 고기로 배를 채우는 장소에서는 상관(上官)은 안색을 좋게 하여 즐기고 지껄이기에 막힘이 없습니다."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보아도 죽순이 고급 식재료로 사용되어 왔슴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선최고의 미식가 허균이 쓴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제20권 중에 벗인 한호(韓濩)를 초대하며 쓴 [경홍(景洪)을 초대함]이란 글이 있습니다.
“봄은 이미 지나서 그윽한 꽃들이 그대를 기다리다가 모두 이울었습니다. 녹음이 저렇게 무성하고 꾀꼬리 소리도 정말 고우니, 봄빛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하필 개울 가에 가득히 핀 복숭아꽃 뿐이겠습니까. 섬돌에서 나푼대는 홍작약도 볼만하니 보낸 수레를 급히 타고 오기 바랍니다. 수수로 빚은 술이 한창 익었으니, 그물을 떠서 냇가에 나가 그대와 함께 잉어를 잡아 회칠 계획입니다. 죽순 나물과 자라 탕도 안주로 장만하겠습니다. 나는 평생에 구복(口腹)만 위한 때문에 맛좋은 주식(酒食)으로 청하오니 먹기만 탐한다고 비웃지 마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벗을 위해 맛난 술과 안주를 준비하는 모습이 참 정겹지요.
요즘 우리나라에선 죽순이 일반 가정요리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된장찌개에 넣거나 볶은 나물인 죽순채(竹筍菜) 정도로 그다지 일반적이지 않은데요, 일본이나 중국에선 다양한 요리에 죽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예술가이자 희대의 미식가로 이름을 날린 키타오오지 로산진(北大路魯山人, 1883-1959)을 모티브로 삼은 일본의 대작 요리만화인 <맛의 달인> 제 49편에 보면 여러가지 죽순요리법이 나오는데요, 졸여서 밥반찬으로 먹는 것 외에 그대로 구워서 먹기도 하고, 죽순 속을 파낸 후 닭고기를 채워 구워 먹기도 합니다. 중국이야 뭐,,,죽순요리의 종주국이라 할 정도로 여러가지 요리에 다양한 방법으로 죽순을 사용하고 있지요.
밭에서 갓 딴 강냉이 껍질 까듯,,,껍질을 한 겹 한 겹 벗겨 냅니다. 한참 벗겨야 합니다. 벗겨지는 껍질 장 수에 비례해 허탈함도 커져갑니다. 알맹이가 갈수록 줄어드니까요.
허탈함을 달래주기라도 하듯,,,껍질을 벗길 때마다 특유의 죽순향이 공간을 가득 채웁니다. 울창한 대숲 한 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죽순 껍질을 보니 얘기거리가 하나 있는데요, 옛날 중국의 한나라 고조(漢高祖) 유방이 정장(亭長) 시절에 죽순 껍질로 만든 관(죽피관竹皮冠, 일명 유씨관劉氏冠, 작미관鵲尾冠이라고도 함)을 쓰고 다녔는데, 천자가 되어서도 늘 그 관을 썼다고 하는 고사지요. 껍질로 관을 만들었다,,,,상상이 잘 안가네요.
단단해서 먹기 힘든 밑둥도 잘라줍니다.
드디어 껍질과 밑둥을 다 제거한 알맹이가 모습을 드러냈군요. 작업하기 전 무게의 1/3도 채 안되는 것 같네요.
잘 다듬은 죽순을 손질하는 방법에 대해 <산림경제(山林經濟)> 치선(治膳)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미공(陳眉公)은 이렇게 말했다. “산중에 죽순(竹筍)은 정말 남새 가운데 특별한 것이니, 국을 끓이거나 포를 뜨는 것은 모두 본래의 맛을 잃은 것이다. 잿불에 묻어 껍질을 벗기는 것이 가장 좋다. 잿불에 묻어 익혀 먹는 맛이란 말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다.” 햇죽순 삶는 법은, 팔팔 끓는 물로 삶아 익히면 연하고 맛이 더욱 좋다. 만약 시들었거든 박하(薄荷)를 조금 넣어서 같이 삶으면 싱싱해진다. 육류와 같이 삶으면 박하를 쓰지 않더라도 그 순이 역시 신선하다. 염순(籢筍)은, 껍질 붙은 죽순은 박하에 약간의 소금을 넣고 한데 삶으면 껍질이 벗겨진다. 또 다른 한 방법은 잿물[灰汁]로 삶아도 벗겨진다. 죽순 말리는 법[做筍乾]은, 5월에 죽순살[筍肉] 1백 근을 따서 작은 물통에 소금 5되를 타서 죽순을 절였다가 반향(半餉 1향은 식사하는 시간, 반향은 짧은 시간)쯤 있다가 건져내어 말렸다가 본래의 소금물을 맑게 가라앉혀 죽순을 삶는다. 익거든 건져내어 눌러 물기를 빼고 햇볕에 말린다. 쓸 때마다 물에 담가 부드러워지거든 담갔던 물에 넣어 달이면 맛이 더욱 좋다. 죽순 말리는 법[晒筍乾]은, 12월에 딴 신선한 죽순을 껍질을 벗기고 썰어서 팔팔 끓는 물에 데쳐 볕에 말렸다가 쓸 때쯤 쌀뜨물에 담갔다 건지면 갓 딴 것 같다. 끓는 소금물에 데쳐 낸 것이 바로 함순(醎筍)이다.
손질한 죽순을 무쇠솥에 넣고 삶습니다. 철분의 화수분인 무쇠솥에 삶으니 죽순의 효능이 더욱 배가되겠지요?
아리고 딻은 맛을 제거하기 위해 쌀뜨물을 부어줍니다.
뚜껑을 잘 닫고 불을 피웁니다. 솥이 참 복스럽지요?
설설~~ 끓고 있네요.
최종 완성된 죽순입니다. 빛깔 참 곱지요?
한참 수확철에 넉넉히 구입해 손질해서 삶은 후 냉동실에 얼려두었다가 조금씩 꺼내어 요리에 사용하면 되겠습니다.^^
cf) 사용장비 : Pentax K-5II, Pentax 35mm limit macro, Metz 52 AF-1, 라이트룸 5.7